지난해 2월부터 조선일보의 주말 경제경영 프리미엄 섹션인 위클리비즈(Weekly BIZ)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5개월 동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3명과 글로벌 CEO 및 경영 대가(大家) 30여명을 인터뷰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올 3월 16일자 Weekly BIZ 1,3면을 장식한 유기돈(42·Gideon Yu)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팀 구단주입니다.
샌프란시스코 49ers는 올 2월 수퍼볼(Superbowl·미식축구 결승전)에서 준우승하고 지금까지 수퍼볼 우승을 5차례 해 미식축구 ‘최다 우승 구단’ 순위 2위의 명문팀이죠.
서울에서 태어나 1세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 테네시주로 건너간 유기돈씨는 고교시절 국제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답니다. 스탠퍼드대(산업공학과) 졸업후 투자은행에 취직해 번 돈으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까지 마쳤는데, MBA 졸업후 취업한 벤처 기업 2개가 2년도 안돼 모두 망하는 바람에 31세에 5만달러의 빚을 진 실업자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무명(無名)이던 야후(Yahoo·2002년 입사)를 시작으로 유튜브(Youtube·2006년), 페이스북(Facebook·2007년)로 옮기면서 세 회사에서 모두 CFO를 맡아 각각 5~100배 이상 회사 규모를 늘렸습니다(매출액 기준·입사 당시와 퇴사 때 비교).
샌프란시스코 49ers는 올 2월 수퍼볼(Superbowl·미식축구 결승전)에서 준우승하고 지금까지 수퍼볼 우승을 5차례 해 미식축구 ‘최다 우승 구단’ 순위 2위의 명문팀이죠.
서울에서 태어나 1세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 테네시주로 건너간 유기돈씨는 고교시절 국제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답니다. 스탠퍼드대(산업공학과) 졸업후 투자은행에 취직해 번 돈으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까지 마쳤는데, MBA 졸업후 취업한 벤처 기업 2개가 2년도 안돼 모두 망하는 바람에 31세에 5만달러의 빚을 진 실업자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무명(無名)이던 야후(Yahoo·2002년 입사)를 시작으로 유튜브(Youtube·2006년), 페이스북(Facebook·2007년)로 옮기면서 세 회사에서 모두 CFO를 맡아 각각 5~100배 이상 회사 규모를 늘렸습니다(매출액 기준·입사 당시와 퇴사 때 비교).
그는 저와 만난 자리에서 “야후 CFO 시절 40건의 M&A를 했고 페이스북에선 마이크로소프트(MS)와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에게 지분 3억7500만달러 어치를 팔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고 유튜브 CFO때는 구글(Google)에 유튜브를 매각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세 회사에서 운용한 자금만 100억달러(약 10조원)에 달합니다.
그는 작년 2월 미국 메이저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구단주가 됐고 ‘실리콘밸리 100인’(비즈니스인사이더·2013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사’(포브스·2011년)에 선정됐는데 ‘10여년 만에 실패자에서 성공자’로 인생 역정이 드라마틱했습니다.
그래선지 제가 쓴 기사는 3월 16~17일 이틀만에 조선닷컴에서 10만건이 넘는 클릭 건수를 기록했고 출판사 2곳이 유기돈 구단주의 역정과 철학을 담은 책을 내고 싶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여러 대학생과 기업인들로부터 “그의 멘토링을 직접 듣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했고, 잡지사를 포함한 10여개 매체에서 이 기사를 다시 싣고 싶다는 문의가 빗발쳤습니다. 열광적인 호응이 실감났죠.
1년 만에 성사된 만남… ‘실리콘밸리의 협상왕’이란 사람이 휴대전화엔 단 100명만 저장
하지만 그를 인터뷰하는 과정은 참 험난했습니다. 1년 전쯤부터 접촉을 시도했지만, 도통 회신이 없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곧바로 연결되는 그의 연락처를 알아 올 2월 샌프란시스코49ers가 슈퍼볼 진출을 확정한 날, 다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우승이든 준우승이든 이제는 만날 때다”라고요.
하지만 만나기 이틀 전, 비보(悲報)가 날라왔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인터뷰가 힘들다”는 메일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저는 무조건 “한국이 당신을 원한다. 우린 꼭 봐야 한다. 장소가 어디든, 시간이 어떻게 되든 무조건 달려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겨우겨우, 하루 전에야 인터뷰가 확정됐습니다.
그는 작년 2월 미국 메이저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구단주가 됐고 ‘실리콘밸리 100인’(비즈니스인사이더·2013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사’(포브스·2011년)에 선정됐는데 ‘10여년 만에 실패자에서 성공자’로 인생 역정이 드라마틱했습니다.
그래선지 제가 쓴 기사는 3월 16~17일 이틀만에 조선닷컴에서 10만건이 넘는 클릭 건수를 기록했고 출판사 2곳이 유기돈 구단주의 역정과 철학을 담은 책을 내고 싶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여러 대학생과 기업인들로부터 “그의 멘토링을 직접 듣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했고, 잡지사를 포함한 10여개 매체에서 이 기사를 다시 싣고 싶다는 문의가 빗발쳤습니다. 열광적인 호응이 실감났죠.
1년 만에 성사된 만남… ‘실리콘밸리의 협상왕’이란 사람이 휴대전화엔 단 100명만 저장
하지만 그를 인터뷰하는 과정은 참 험난했습니다. 1년 전쯤부터 접촉을 시도했지만, 도통 회신이 없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곧바로 연결되는 그의 연락처를 알아 올 2월 샌프란시스코49ers가 슈퍼볼 진출을 확정한 날, 다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우승이든 준우승이든 이제는 만날 때다”라고요.
하지만 만나기 이틀 전, 비보(悲報)가 날라왔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인터뷰가 힘들다”는 메일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저는 무조건 “한국이 당신을 원한다. 우린 꼭 봐야 한다. 장소가 어디든, 시간이 어떻게 되든 무조건 달려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겨우겨우, 하루 전에야 인터뷰가 확정됐습니다.
그가 근무하는 샌프란시스코 동쪽 해변 부근에 있는 캔들스틱(candlestick)구장에 갔더니, 햇빛은 쨍쨍한데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곳에 한국인이 있다니.” 이런 상념에 잠깐 잠길 무렵, 그가 눈앞에 번쩍 나타났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왜 나를 만나자고 했느냐?"고 묻더군요. 지금까지 그의 인생 스토리를 제대로 다룬 한국과 미국 언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하자, 그는 “와우!”라고 크게 소리치면서 엄청난 영광이라고 너스레를 떨더군요. 그냥 미식축구에 대해서나 물어보겠거니 했나 봅니다.
이후 1시간 30분간의 인터뷰는 너무 신나 꼭 계속 말을 이어가고 싶다는 느낌이 줄곧 들었습니다. 그는 ‘행복 바이러스’를 확실하게 발산하는 사람이었고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특이하게도 그가 말하는 모든 문장에는 '매우 매우'(very very)', 'so hard(아주 열심히)'', 'so thankful(너무 감사하다)' 같은 단어들이 꼭 포함돼 있었습니다. 다른 주제로 질문해도 꼭 미식축구나 자신의 과거 상사가 해준 말들로 답변을 매듭지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현재 자리에 대한 ‘열정’과 과거 자신의 멘토들에 대한 ‘감사’, 이 두 가지로 아주 끈끈하게 엮여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과거의 어려움이 생각나는지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그와의 90분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언급은 세가지인데, 첫번째는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안전한 길을 택하기 싫었어요. 저는 제 열정(passion)이 부르는 대로 살아가고 싶었어요. 저는 제 사회생활 내내 열정을 따라갔고 거기에서 큰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기업을 택했다면 지금도 중간 매니저 밖에 못했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 두 번 다시 안 올 역사를 바꾸는 현장에 있다는 걸 절감했고 인터넷을 사랑했기에 야후, 유튜브, 페이스북에 입사했다”고 했습니다.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구하자, “장기적으로 욕심을 내야한다(Be a longterm greedy!). 장기적 성공 방정식의 답은 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 입사와 창업이다”고 단언했습니다. 약간 생뚱맞게도 저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같은 실리콘밸리 '거물'들의 전화번호가 그의 휴대폰에 몇명이나 저장돼 있는지 궁금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자기 휴대폰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딱 100명이다”고 답했습니다. “친한 실리콘밸리의 인사들과 전화는 거의 하지 않고 메일로만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편하답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곳에 한국인이 있다니.” 이런 상념에 잠깐 잠길 무렵, 그가 눈앞에 번쩍 나타났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왜 나를 만나자고 했느냐?"고 묻더군요. 지금까지 그의 인생 스토리를 제대로 다룬 한국과 미국 언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하자, 그는 “와우!”라고 크게 소리치면서 엄청난 영광이라고 너스레를 떨더군요. 그냥 미식축구에 대해서나 물어보겠거니 했나 봅니다.
이후 1시간 30분간의 인터뷰는 너무 신나 꼭 계속 말을 이어가고 싶다는 느낌이 줄곧 들었습니다. 그는 ‘행복 바이러스’를 확실하게 발산하는 사람이었고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특이하게도 그가 말하는 모든 문장에는 '매우 매우'(very very)', 'so hard(아주 열심히)'', 'so thankful(너무 감사하다)' 같은 단어들이 꼭 포함돼 있었습니다. 다른 주제로 질문해도 꼭 미식축구나 자신의 과거 상사가 해준 말들로 답변을 매듭지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현재 자리에 대한 ‘열정’과 과거 자신의 멘토들에 대한 ‘감사’, 이 두 가지로 아주 끈끈하게 엮여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과거의 어려움이 생각나는지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그와의 90분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언급은 세가지인데, 첫번째는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안전한 길을 택하기 싫었어요. 저는 제 열정(passion)이 부르는 대로 살아가고 싶었어요. 저는 제 사회생활 내내 열정을 따라갔고 거기에서 큰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기업을 택했다면 지금도 중간 매니저 밖에 못했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 두 번 다시 안 올 역사를 바꾸는 현장에 있다는 걸 절감했고 인터넷을 사랑했기에 야후, 유튜브, 페이스북에 입사했다”고 했습니다.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구하자, “장기적으로 욕심을 내야한다(Be a longterm greedy!). 장기적 성공 방정식의 답은 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 입사와 창업이다”고 단언했습니다. 약간 생뚱맞게도 저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같은 실리콘밸리 '거물'들의 전화번호가 그의 휴대폰에 몇명이나 저장돼 있는지 궁금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자기 휴대폰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딱 100명이다”고 답했습니다. “친한 실리콘밸리의 인사들과 전화는 거의 하지 않고 메일로만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편하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장군 이름을 딴 이름… 모의 간절한 기도와 지원이 큰 힘
두번째로 그가 존경하는 인물이나 영웅이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유기돈씨는 이에 대해 “나의 아버지가 내 인생의 영웅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1970년대초 보수적인 미국 남부 지방의 목사로 일했는데, 교회에서 나오는 사례금은 받지 않고,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어머니가 버는 돈으로 근근히 생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기돈씨는 “과거를 돌이켜볼 때 가난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돈은 한푼도 없다시피 살았지만, 우리 가족의 삶의 행복지수는 높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동생과 나를 키울 때 우리가 누구로부터 동정받지 않게 해줬습니다.
두번째로 그가 존경하는 인물이나 영웅이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유기돈씨는 이에 대해 “나의 아버지가 내 인생의 영웅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1970년대초 보수적인 미국 남부 지방의 목사로 일했는데, 교회에서 나오는 사례금은 받지 않고,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어머니가 버는 돈으로 근근히 생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기돈씨는 “과거를 돌이켜볼 때 가난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돈은 한푼도 없다시피 살았지만, 우리 가족의 삶의 행복지수는 높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동생과 나를 키울 때 우리가 누구로부터 동정받지 않게 해줬습니다.
유기돈씨가 스탠포드대 입학허가서를 받은 후 학비(2만 5000달러)를 감당하지 못해 망설이자, 아버지는 아들 몰래 입학허가서에 서명해 보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내가 학교에 가서 무릎을 꿇어서라도 너가 입학되도록 사정하겠다’고 말씀했지요.” 그는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 같은 고학(苦學)으로 대학을 마쳤습니다.
사회 생활 초기에 실패를 거듭했던 그는 지금은 큰 돈을 모아 돈 걱정은 잊은 듯 했습니다. “유튜브 매각 때는 서무 직원조차 100만달러 돈방석에 앉았다”고 했으니, 당시 CFO였던 그는 그 수십배는 벌었겠지요.
유기돈씨의 이름은 구약성서의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Gideon)’이란 인물에서 따왔답니다. 기드온은 므낫세족출신 300명 장병을 이끌고 미디안인 대군을 무찔러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한 왕으로, ‘베어 쓰러뜨리다’란 뜻입니다. 유기돈씨는 “기드온이란 이름처럼 나도 살아왔다”고 하더군요. 어려움 속에서도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이뤄냈다는 뜻에서라고 생각됐습니다.
나라도 김종훈 미래부 장관 사퇴자처럼 한국을 떠났을 것 같다”
마지막 인상적인 대목은 그가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 부분이었습니다. 몇몇 한국기업의 자문이나 사외이사도 굉장히 열심히 잘 할 자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인상적인 대목은 그가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 부분이었습니다. 몇몇 한국기업의 자문이나 사외이사도 굉장히 열심히 잘 할 자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서 사퇴한 김종훈씨 상황이 순간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그래서 ‘김종훈씨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죠.
“나 역시 미국 시민권자이고 한국말을 못하는데 그게 결격사유가 된다면 한국에서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걸어온 인생경로에 자부심을 항상 느끼고 있거든요.”
그는 "한국말은 물론 열심히 연습해야지만, 내가 만약 한국에서 제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면 그건 아무 문제가 아닐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유기돈 구단주에겐 또다른 꿈이 있더군요. 올해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스포츠와 경영’이란 주제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미래의 꿈이 교수냐고 물었더니, 그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나 역시 미국 시민권자이고 한국말을 못하는데 그게 결격사유가 된다면 한국에서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걸어온 인생경로에 자부심을 항상 느끼고 있거든요.”
그는 "한국말은 물론 열심히 연습해야지만, 내가 만약 한국에서 제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면 그건 아무 문제가 아닐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유기돈 구단주에겐 또다른 꿈이 있더군요. 올해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스포츠와 경영’이란 주제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미래의 꿈이 교수냐고 물었더니, 그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에휴, 할 것이 너무도 많아요. 물론 어느 순간에 가르치는 일을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직 저는 인생을 배우고 있어요. 제 인생 점수는 아직 10점 만점에 6~7점 정도밖에 안돼요. 매우매우 모자라요. 하하하하하.”
“‘열정’을 따라갔더니 미국 실리콘밸리의 최고가 됐다”는 유기돈 구단주, 그가 5,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해 있을지 참 궁금합니다.
"거기서 지금 뭐 합니까? 동작 그만!"
지난 2006년 10월 초 새벽 3시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레스토랑 야외 주차장.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주차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흑인과 동양인에게 한 경찰관이 달려왔다. 후드 점퍼와 야구 모자 차림의 두 남자에게 경찰관은 "지금, 뭐 하는 겁니까?" 하고 다그쳤다. 동양인이 쥐꼬리만 한 목소리로 "인수·합병을 진행 중인데요" 하며 종이 계약서를 경찰관에게 내밀었다. 계약서에는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가 회사를 구글에 16억5000만달러(당시 2조원)에 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멋쩍어진 경찰관은 "계속하세요"라며 경찰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지난 2006년 10월 초 새벽 3시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레스토랑 야외 주차장.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주차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흑인과 동양인에게 한 경찰관이 달려왔다. 후드 점퍼와 야구 모자 차림의 두 남자에게 경찰관은 "지금, 뭐 하는 겁니까?" 하고 다그쳤다. 동양인이 쥐꼬리만 한 목소리로 "인수·합병을 진행 중인데요" 하며 종이 계약서를 경찰관에게 내밀었다. 계약서에는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가 회사를 구글에 16억5000만달러(당시 2조원)에 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멋쩍어진 경찰관은 "계속하세요"라며 경찰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 야후·유튜브·페이스북을 거쳐 아시아 최초의 미국 메이저 스포츠 구단주가 된 유기돈 샌프란시스코 49ers 구단주는‘열정을 직업으로(passion to profession)’가 삶의 모토라고 했다. 지난 8일 샌프란시스코 남동쪽 해변에 있는 49ers의 홈구장에서 그가 손으로 미식 축구공을 튕기며 활짝 웃고 있다. / 샌프란시스코=이신영 기자
야구 모자 차림의 동양인이 바로 재미 교포 한국인 유기돈(42·Gideon Yu) 당시 유튜브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이고, 후드 점퍼 차림 흑인은 데이비드 드러몬드(Drummond) 구글 최고전략책임자(CSO)였다. 유기돈씨는 야후와 유튜브, 페이스북의 CFO를 차례로 역임한 데 이어 2012년 2월부터는 미식축구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팀의 공동 구단주를 맡아 다시 화제를 모았다. 미국 메이저 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인 구단주가 된 그는 지난 2월 수퍼볼(Superbowl·결승전)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두 유색 인종이 그 후줄근한 옷차림이었으니 경찰이 의심할 법도 했죠." 유기돈씨는 7년 전의 주차장 협상을 회상하며 껄껄 웃었다. "경찰이 떠난 뒤 드러몬드와 손뼉을 치며 유쾌하게 계약을 마쳤어요." 주차장에서 만난 것은 자정이 돼서야 에릭 슈미트 구글 CEO가 이사회에서 인수대금을 확정했는데, 그곳이 유튜브와 구글의 중간 지점으로 서로 잘 아는 곳이어서였다고 한다.
유기돈씨는 실리콘밸리의 '협상왕' 중 한 사람이다. 야후의 CFO로 일하며 인수·합병 40건을 성사시켰고, 페이스북 CFO 시절엔 마이크로소프트와 리카싱 청쿵(長江)그룹 회장에게 지분 3억7500만달러어치를 팔아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가 지금까지 손에서 쥐락펴락한 자금이 100억달러에 이른다고 했다. 그는 "유튜브를 구글에 매각했더니 인터넷이 바뀌었고, 페이스북에 자금을 댔더니 세상이 변했다"고 했다. 유튜브 매각 협상이 종료되고 나서 에릭 슈미트 CEO가 그에게 귓속말로 "우리가 유튜브를 더 비싸게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네!" 하며 껄껄 웃자 유씨는 이렇게 맞받아쳤다고 한다. "저희가 유튜브를 더 싸게 팔 수 있었다는 사실도 회장님이 아셨으면 좋겠는데요!"
"두 유색 인종이 그 후줄근한 옷차림이었으니 경찰이 의심할 법도 했죠." 유기돈씨는 7년 전의 주차장 협상을 회상하며 껄껄 웃었다. "경찰이 떠난 뒤 드러몬드와 손뼉을 치며 유쾌하게 계약을 마쳤어요." 주차장에서 만난 것은 자정이 돼서야 에릭 슈미트 구글 CEO가 이사회에서 인수대금을 확정했는데, 그곳이 유튜브와 구글의 중간 지점으로 서로 잘 아는 곳이어서였다고 한다.
유기돈씨는 실리콘밸리의 '협상왕' 중 한 사람이다. 야후의 CFO로 일하며 인수·합병 40건을 성사시켰고, 페이스북 CFO 시절엔 마이크로소프트와 리카싱 청쿵(長江)그룹 회장에게 지분 3억7500만달러어치를 팔아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가 지금까지 손에서 쥐락펴락한 자금이 100억달러에 이른다고 했다. 그는 "유튜브를 구글에 매각했더니 인터넷이 바뀌었고, 페이스북에 자금을 댔더니 세상이 변했다"고 했다. 유튜브 매각 협상이 종료되고 나서 에릭 슈미트 CEO가 그에게 귓속말로 "우리가 유튜브를 더 비싸게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네!" 하며 껄껄 웃자 유씨는 이렇게 맞받아쳤다고 한다. "저희가 유튜브를 더 싸게 팔 수 있었다는 사실도 회장님이 아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는 '실리콘밸리 100인'(비즈니스인사이더·2013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사'(포브스·2011년)에 선정되기도 했다.
"솔직히 기업 가치를 매기는 데 '과학적' 방법은 없어요. 페이스북 CFO 시절 마이크로소프트에 지분을 팔 때 사내에서 페이스북의 가치로 100억달러가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50억을 얹어서 150억달러로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150억을 불렀더니 그들이 바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런 큰 협상을 하려면 말이죠, 진짜 거침없이, 한 치도 두려움 없이 원하는 것을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아무리 미쳤다고 주위에서 쳐다봐도 협상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150억달러라고 당당하게 말해야 하는 것이죠. 제 협상 원칙은 품질 좋은 제품을 먼저 갖추고, 우리의 스토리를 한 치 오차도 없이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하며, 마지막으로 '우리 가치가 이 정도나 되니 더 돈을 받아야 되겠다!'고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의 삶의 모토는 '열정을 직업으로(passion to profession)'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뒤 닷컴(dot-com) 창업 붐이 불었을 때 갓 창업한 IT 벤처기업 두 곳에 입사했다가 쫄딱 망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실패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가 좋아했던 야후·유튜브·페이스북에 차례로 입사하며 승승장구했다.
포티나이너스 입사도 순전히 내면의 열정을 따른 결과였다. "과거 첫 일터인 한 투자은행에서 만난 제 친구가 이렇게 조언하더군요. '너처럼 미식축구를 사랑하고, 첨단 IT를 좋아하고, 비즈니스를 천직으로 여긴다면 49ers에 가야 하지 않겠어?'라고요. 그래서 생면부지의 구단 소유주인 제드 요크(York) 회장을 찾아갔죠. 지금 저는 꿈의 직장에 와 있습니다."
그의 손에서 49ers는 '대박'이 터졌다. 미국 은행들과 미식축구(NFL) 사무국으로부터 자금 12억달러를 끌어내 첨단 구장을 새로 건립 중이기 때문이다. 12억달러는 미국 스포츠 구단이 사업을 위해 외부에서 끌어들인 자금 중 사상 최대 규모라고 그는 말했다.
Weekly BIZ는 지난 8일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Candlestick) 구장의 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검게 그은 피부와 다부진 몸매는 진짜 미식축구 선수 같았다.
"토요일 아침에 잠에서 깨면 월요일 출근 날부터 기다려져요, 매우, 매우. 진짜 매우 열심히 일하고 그걸 즐겨요."
유기돈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 구단주는 서울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Nashville)시로 이주했다.
"1970년대 초 미국의 보수적인 남부 지방은 한인이나 히스패닉 같은 소수민족이 거의 없었지요. 내슈빌의 완벽한 소수민족으로 자란 것이죠."
게다가 돈도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교회에서 나오는 사례금을 받지 않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어머니가 버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했다.
고교 때 참가한 국제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수재(秀才) 소리를 듣던 그는 스탠퍼드대(산업공학과) 입학 허가서를 받았지만, 학비 2만5000달러를 감당하지 못해 망설였다. 하지만 그 사이 아버지는 아들 몰래 입학 허가서에 서명해 학교에 보냈다.
"아버지가 '너를 스탠퍼드 같은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미국에 오는 희생을 감수한 것'이라며 '내가 학교에 가서 무릎을 꿇어서라도 사정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는 제 인생의 영웅입니다."
장학금과 아르바이트, 학자금 대출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투자은행에서 잠시 근무한 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그런데 그가 29세 때 대학원을 나와 선택한 길은 작은 벤처기업이었다. 전자상거래 회사 '더맨닷컴(TheMan.com)'을 비롯한 2개 벤처기업에서 CFO로 차례로 일했다. 그러나 두 곳 모두 2년을 못 채우고 망했고, 그는 5만달러 빚더미 위에 앉았다.
"솔직히 기업 가치를 매기는 데 '과학적' 방법은 없어요. 페이스북 CFO 시절 마이크로소프트에 지분을 팔 때 사내에서 페이스북의 가치로 100억달러가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50억을 얹어서 150억달러로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150억을 불렀더니 그들이 바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런 큰 협상을 하려면 말이죠, 진짜 거침없이, 한 치도 두려움 없이 원하는 것을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아무리 미쳤다고 주위에서 쳐다봐도 협상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150억달러라고 당당하게 말해야 하는 것이죠. 제 협상 원칙은 품질 좋은 제품을 먼저 갖추고, 우리의 스토리를 한 치 오차도 없이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하며, 마지막으로 '우리 가치가 이 정도나 되니 더 돈을 받아야 되겠다!'고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의 삶의 모토는 '열정을 직업으로(passion to profession)'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뒤 닷컴(dot-com) 창업 붐이 불었을 때 갓 창업한 IT 벤처기업 두 곳에 입사했다가 쫄딱 망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실패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가 좋아했던 야후·유튜브·페이스북에 차례로 입사하며 승승장구했다.
포티나이너스 입사도 순전히 내면의 열정을 따른 결과였다. "과거 첫 일터인 한 투자은행에서 만난 제 친구가 이렇게 조언하더군요. '너처럼 미식축구를 사랑하고, 첨단 IT를 좋아하고, 비즈니스를 천직으로 여긴다면 49ers에 가야 하지 않겠어?'라고요. 그래서 생면부지의 구단 소유주인 제드 요크(York) 회장을 찾아갔죠. 지금 저는 꿈의 직장에 와 있습니다."
그의 손에서 49ers는 '대박'이 터졌다. 미국 은행들과 미식축구(NFL) 사무국으로부터 자금 12억달러를 끌어내 첨단 구장을 새로 건립 중이기 때문이다. 12억달러는 미국 스포츠 구단이 사업을 위해 외부에서 끌어들인 자금 중 사상 최대 규모라고 그는 말했다.
Weekly BIZ는 지난 8일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Candlestick) 구장의 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검게 그은 피부와 다부진 몸매는 진짜 미식축구 선수 같았다.
"토요일 아침에 잠에서 깨면 월요일 출근 날부터 기다려져요, 매우, 매우. 진짜 매우 열심히 일하고 그걸 즐겨요."
유기돈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 구단주는 서울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Nashville)시로 이주했다.
"1970년대 초 미국의 보수적인 남부 지방은 한인이나 히스패닉 같은 소수민족이 거의 없었지요. 내슈빌의 완벽한 소수민족으로 자란 것이죠."
게다가 돈도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교회에서 나오는 사례금을 받지 않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어머니가 버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했다.
고교 때 참가한 국제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수재(秀才) 소리를 듣던 그는 스탠퍼드대(산업공학과) 입학 허가서를 받았지만, 학비 2만5000달러를 감당하지 못해 망설였다. 하지만 그 사이 아버지는 아들 몰래 입학 허가서에 서명해 학교에 보냈다.
"아버지가 '너를 스탠퍼드 같은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미국에 오는 희생을 감수한 것'이라며 '내가 학교에 가서 무릎을 꿇어서라도 사정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는 제 인생의 영웅입니다."
장학금과 아르바이트, 학자금 대출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투자은행에서 잠시 근무한 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그런데 그가 29세 때 대학원을 나와 선택한 길은 작은 벤처기업이었다. 전자상거래 회사 '더맨닷컴(TheMan.com)'을 비롯한 2개 벤처기업에서 CFO로 차례로 일했다. 그러나 두 곳 모두 2년을 못 채우고 망했고, 그는 5만달러 빚더미 위에 앉았다.
▲ 샌프란시스코 49ers 제공
◇"안정적인 기업에 입사하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왜 대기업에 입사하지 않았나요?
"왜냐하면 전 세상에 두 번 오지 않을 역사의 한 단면을 그려나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창업 기업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길이었습니다. 첫 두 곳에서 실패를 맛본 뒤 한 지인이 '무엇에 열정을 느끼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인터넷과 기술이다'고 답했죠. 그랬더니 지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서비스 기업에 입사해 보라'고 하더군요. 답은 야후(Yahoo)였어요. 야후에서 빚도 다 갚았지요(웃음). 유튜브에 입사할 때도 하루 3시간씩 유튜브를 보다가 입사한 것이고, 유튜브를 구글에 매각했을 때쯤 페이스북에 중독된 걸 깨닫고 페이스북에 들어갔습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도 한때 작은 벤처기업이었잖아요?
"네. 유튜브에 입사한 2006년에 66㎡(약 20평)의 큰 방에 직원 65명이 같이 일했어요. 2007년에 입사한 페이스북은 150명뿐이었고요. 그래서 우리 부모님을 이해시키는 데 엄청 힘들었어요. 거의 불가능했죠. 부모님은 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큰 회사에 안 가느냐는 거였어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역사를 바꾸는 현장에 있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인터넷을 사랑했고요. 저에겐 도전할 만한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큰 리스크였지만 저는 안전한 길을 택하기 싫었어요. 전 제 열정이 부르는 대로 따라가고 싶었어요. 사실 전 제 사회생활 내내 열정을 따라갔고 거기에서 큰 희열을 느꼈습니다.
히트 수가 하루 3억건에 불과했던 유튜브는 지금은 40억건으로 늘었고, 페이스북은 직원이 4000명에 이용자 수가 10억명을 돌파했습니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했으면 중간 매니저밖에 못 했을 거예요. 엄청 큰 회사에서 손톱만 한 거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재산 증식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어요. 대기업은 연봉은 작지만, 주식으로 돈을 못 벌잖아요? 유튜브 매각 때는 서무 직원조차 100만달러 돈방석에 앉았지요(웃음)."
―한국도 젊은이들의 창업을 독려합니다.
"예전 직장 상사가 이런 조언을 했어요. 장기적으로 욕심을 내야 한다(be a long term greedy)고요. 소규모 전투에선 져도 되지만,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이기려면 장기적으로 성공 방정식을 작동해야 하는 겁니다. 그 답은 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 입사와 창업입니다."
―실리콘밸리 같은 창업 문화를 한국에 정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두세 가지 조언을 부탁합니다.
"우선 실패를 포용하는 것입니다. 말하기 너무 쉽지만 너무 하기 힘들어요. 한국의 누군가 실패를 포용해야 한다고 하면, 이걸 인정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의 아들이 삼성에 갈 기회를 버리고 신생 벤처기업에서 일했는데 그 회사가 망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그걸 인정할 수 있느냐? 이런 질문에 대해 '아,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 아들은…' 하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어요. 둘째, 나이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창업은 젊은이들이 하는 겁니다. 나이 든 이를 존경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이에 상관없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좋은 팀을 만들자는 겁니다. 말로는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실천은 훨씬 어렵습니다."
―인생의 원칙이 있다면 뭡니까?
"두 가지 정도가 있어요. (잠깐 머뭇거리더니) 첫째, 회사 직원으로서 보스를 빛나게 하라입니다. 보스가 오기 전에 일터에 와라. 그가 퇴근하기 전까지 가지 마라. 그가 기분 좋은 일을 찾고, 그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을 찾아라. 보스를 빛내면 항상 보스가 당신을 빛내게 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당신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도 당신만큼 당신을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술을 스포츠와 융합하겠다"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가요?
"세계에서 가장 친한 친구는 잠시 월트 디즈니에서 근무할 때 한 투자은행에서 만난 친구인데, 제가 그의 고객이었죠. 지금은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기업 사장인데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말하더군요. '야, 잠깐만. 넌 미식축구를 사랑하고, 비즈니스를 좋아하고, 기술을 좋아하지. 그런데 포티나이너스는 이 모든 걸 다 하지 않느냐?"고 말이죠. 처음엔 완전히 미친 생각이었죠. 전 기술 전문가였거든요.
사람이 열정을 따라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런데 만약 당신이 취미를 일로 삼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열정을 직업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포티나이너스의 오너인 제드 요크(York)를 만났죠."
마침 요크는 새 스타디움을 지을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하고 있었고, 유기돈씨는 그 고민부터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는 공동 구단주 직함을 받으면서 구단 지분 1%를 사들였다.
49ers는 수퍼볼 우승을 5차례나 차지한 명문팀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49ers의 구단 가치는 2011년 9억9000만달러에서 지난해 11억7500만달러로 올라 미국 미식축구팀 33개 가운데 9위다. 전 세계 스포츠 구단을 통틀어 가치가 26위이며, 지난해 매출 2억4500만달러(약 2685억원)를 올렸다.
―49ers에선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이런 걸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일 당신이 엄청난 49ers 팬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난데없이 구단에서 '구장에서 하고 싶은 최고 경험이 뭐예요? 한번 만들어 보세요. 우리가 돈을 대드릴게요' 하고 제안이 온 겁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저를 위해서 최고의 스포츠 경험을 만들어 선사하는 겁니다. 물론 다른 사람도 좋아했으면 좋겠지만요. 게다가 이런 일을 5번이나 수퍼볼을 우승한 49ers 같은 팀을 위해 하고, 거기에 모든 자원과 브랜드를 쓸 수 있다니요. 완전 대박(super), 재밌습니다."
그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스포츠와 IT를 결합하는 것이다.
"스포츠 게임 많이 보러 가세요? 만약 경기장 밖에 있으면, 기술의 혜택이 어디든 다 있습니다. 극장과 쇼핑센터에서 스마트폰을 쓰고, 모바일 쿠폰으로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죠. 그런데 스포츠 구장에 가봐요. 아무것도 없어요. 스마트폰도 소용없고, 모바일 결제도 하지 못하고, 방금 놓친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즉시 재생해 다시 볼 수도 없어요. 이 모든 것을 우린 할 겁니다. 좌석에서 음식도 배달하게 할 겁니다. 첨단 기술이 녹아든 스포츠 관람이죠. 사람들은 아직도 구장에 올 때 집에서보다 불편한 것을 감수하고 옵니다. 만약 집에서 TV를 보는 것 이상의 경험을 구장에서 제공하면 어떠냐는 것, 그게 우리 목표입니다."
◇"실무자급 직원이라도 훌륭한 포인트를 지적하면 거기에 눈높이를 맞춰라"
―구단 직원 200명에게 가장 강조하는 게 무엇입니까?
"'매우 강력한 의견을 가지고 자존심을 버리고 토론하라'는 것입니다. 의견이 달라 누군가 반대하더라도 감정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최고의 정답을 만들기 위해선 토론이 필요하죠. 또 최고의 직원으로부터 정수(精髓)를 뽑아내고 싶다면, 그들의 의견을 솔직하게 묻고 생각을 깊이 존중해야 해요. 저는 아무리 실무자급 직원이라도 제가 몰랐던 훌륭한 포인트를 지적하면 '내 생각을 바꾸고 당신의 지적에 눈높이를 맞추겠습니다'라고 대답해요. 이런 문화가 엮이고 엮여 완성된 조직이 되는 겁니다."
그는 과거 야후·페이스북 등에서 일한 동료 임원 여러 명을 구단에 스카우트했다. "업계에서 비판을 받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미식축구 최고의 '인재 집단'을 만들기 위해선 다소 이기적일 수 있지만 '친정' 사정에 관심을 뚝 끊고 내 팀에만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고교 시절 "완전 공부벌레였다"고 했다.
"스탠퍼드에 처음 왔을 때는 과학 쪽으로 진출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투자은행에 취직할 생각이라고 해서 저는 '투자은행? 그게 뭐예요?' 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기본적으로 비즈니스를 위한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진짜 과학보다 더 재미있더라고요. 수학과 과학, 비즈니스와 경제를 모두 결합한 것이더라고요. 진짜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재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대학 2학년 때 정말 재미있어서 스탠퍼드를 통틀어 돈에 관한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유기돈의 ADVICE
1다른 사람이 원하는 당신이 되면 안 됩니다
당신이 품고 있는 열정을 직업으로 만드세요. 내면에서 진심으로 느끼는 열정을 찾아 그 길을 따라가십시오.
2직장에서 최고가 되려면 당신의 상사를 빛나게 하세요
그가 나오기 전에 출근하고 그가 퇴근하기 전까지 가지 말고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세요. 상사가 빛나면 당신도 빛날 것입니다.
―왜 대기업에 입사하지 않았나요?
"왜냐하면 전 세상에 두 번 오지 않을 역사의 한 단면을 그려나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창업 기업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길이었습니다. 첫 두 곳에서 실패를 맛본 뒤 한 지인이 '무엇에 열정을 느끼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인터넷과 기술이다'고 답했죠. 그랬더니 지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서비스 기업에 입사해 보라'고 하더군요. 답은 야후(Yahoo)였어요. 야후에서 빚도 다 갚았지요(웃음). 유튜브에 입사할 때도 하루 3시간씩 유튜브를 보다가 입사한 것이고, 유튜브를 구글에 매각했을 때쯤 페이스북에 중독된 걸 깨닫고 페이스북에 들어갔습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도 한때 작은 벤처기업이었잖아요?
"네. 유튜브에 입사한 2006년에 66㎡(약 20평)의 큰 방에 직원 65명이 같이 일했어요. 2007년에 입사한 페이스북은 150명뿐이었고요. 그래서 우리 부모님을 이해시키는 데 엄청 힘들었어요. 거의 불가능했죠. 부모님은 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큰 회사에 안 가느냐는 거였어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역사를 바꾸는 현장에 있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인터넷을 사랑했고요. 저에겐 도전할 만한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큰 리스크였지만 저는 안전한 길을 택하기 싫었어요. 전 제 열정이 부르는 대로 따라가고 싶었어요. 사실 전 제 사회생활 내내 열정을 따라갔고 거기에서 큰 희열을 느꼈습니다.
히트 수가 하루 3억건에 불과했던 유튜브는 지금은 40억건으로 늘었고, 페이스북은 직원이 4000명에 이용자 수가 10억명을 돌파했습니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했으면 중간 매니저밖에 못 했을 거예요. 엄청 큰 회사에서 손톱만 한 거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재산 증식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어요. 대기업은 연봉은 작지만, 주식으로 돈을 못 벌잖아요? 유튜브 매각 때는 서무 직원조차 100만달러 돈방석에 앉았지요(웃음)."
―한국도 젊은이들의 창업을 독려합니다.
"예전 직장 상사가 이런 조언을 했어요. 장기적으로 욕심을 내야 한다(be a long term greedy)고요. 소규모 전투에선 져도 되지만,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이기려면 장기적으로 성공 방정식을 작동해야 하는 겁니다. 그 답은 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 입사와 창업입니다."
―실리콘밸리 같은 창업 문화를 한국에 정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두세 가지 조언을 부탁합니다.
"우선 실패를 포용하는 것입니다. 말하기 너무 쉽지만 너무 하기 힘들어요. 한국의 누군가 실패를 포용해야 한다고 하면, 이걸 인정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의 아들이 삼성에 갈 기회를 버리고 신생 벤처기업에서 일했는데 그 회사가 망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그걸 인정할 수 있느냐? 이런 질문에 대해 '아,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 아들은…' 하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어요. 둘째, 나이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창업은 젊은이들이 하는 겁니다. 나이 든 이를 존경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이에 상관없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좋은 팀을 만들자는 겁니다. 말로는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실천은 훨씬 어렵습니다."
―인생의 원칙이 있다면 뭡니까?
"두 가지 정도가 있어요. (잠깐 머뭇거리더니) 첫째, 회사 직원으로서 보스를 빛나게 하라입니다. 보스가 오기 전에 일터에 와라. 그가 퇴근하기 전까지 가지 마라. 그가 기분 좋은 일을 찾고, 그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을 찾아라. 보스를 빛내면 항상 보스가 당신을 빛내게 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당신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도 당신만큼 당신을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술을 스포츠와 융합하겠다"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가요?
"세계에서 가장 친한 친구는 잠시 월트 디즈니에서 근무할 때 한 투자은행에서 만난 친구인데, 제가 그의 고객이었죠. 지금은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기업 사장인데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말하더군요. '야, 잠깐만. 넌 미식축구를 사랑하고, 비즈니스를 좋아하고, 기술을 좋아하지. 그런데 포티나이너스는 이 모든 걸 다 하지 않느냐?"고 말이죠. 처음엔 완전히 미친 생각이었죠. 전 기술 전문가였거든요.
사람이 열정을 따라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런데 만약 당신이 취미를 일로 삼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열정을 직업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포티나이너스의 오너인 제드 요크(York)를 만났죠."
마침 요크는 새 스타디움을 지을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하고 있었고, 유기돈씨는 그 고민부터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는 공동 구단주 직함을 받으면서 구단 지분 1%를 사들였다.
49ers는 수퍼볼 우승을 5차례나 차지한 명문팀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49ers의 구단 가치는 2011년 9억9000만달러에서 지난해 11억7500만달러로 올라 미국 미식축구팀 33개 가운데 9위다. 전 세계 스포츠 구단을 통틀어 가치가 26위이며, 지난해 매출 2억4500만달러(약 2685억원)를 올렸다.
―49ers에선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이런 걸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일 당신이 엄청난 49ers 팬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난데없이 구단에서 '구장에서 하고 싶은 최고 경험이 뭐예요? 한번 만들어 보세요. 우리가 돈을 대드릴게요' 하고 제안이 온 겁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저를 위해서 최고의 스포츠 경험을 만들어 선사하는 겁니다. 물론 다른 사람도 좋아했으면 좋겠지만요. 게다가 이런 일을 5번이나 수퍼볼을 우승한 49ers 같은 팀을 위해 하고, 거기에 모든 자원과 브랜드를 쓸 수 있다니요. 완전 대박(super), 재밌습니다."
그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스포츠와 IT를 결합하는 것이다.
"스포츠 게임 많이 보러 가세요? 만약 경기장 밖에 있으면, 기술의 혜택이 어디든 다 있습니다. 극장과 쇼핑센터에서 스마트폰을 쓰고, 모바일 쿠폰으로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죠. 그런데 스포츠 구장에 가봐요. 아무것도 없어요. 스마트폰도 소용없고, 모바일 결제도 하지 못하고, 방금 놓친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즉시 재생해 다시 볼 수도 없어요. 이 모든 것을 우린 할 겁니다. 좌석에서 음식도 배달하게 할 겁니다. 첨단 기술이 녹아든 스포츠 관람이죠. 사람들은 아직도 구장에 올 때 집에서보다 불편한 것을 감수하고 옵니다. 만약 집에서 TV를 보는 것 이상의 경험을 구장에서 제공하면 어떠냐는 것, 그게 우리 목표입니다."
◇"실무자급 직원이라도 훌륭한 포인트를 지적하면 거기에 눈높이를 맞춰라"
―구단 직원 200명에게 가장 강조하는 게 무엇입니까?
"'매우 강력한 의견을 가지고 자존심을 버리고 토론하라'는 것입니다. 의견이 달라 누군가 반대하더라도 감정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최고의 정답을 만들기 위해선 토론이 필요하죠. 또 최고의 직원으로부터 정수(精髓)를 뽑아내고 싶다면, 그들의 의견을 솔직하게 묻고 생각을 깊이 존중해야 해요. 저는 아무리 실무자급 직원이라도 제가 몰랐던 훌륭한 포인트를 지적하면 '내 생각을 바꾸고 당신의 지적에 눈높이를 맞추겠습니다'라고 대답해요. 이런 문화가 엮이고 엮여 완성된 조직이 되는 겁니다."
그는 과거 야후·페이스북 등에서 일한 동료 임원 여러 명을 구단에 스카우트했다. "업계에서 비판을 받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미식축구 최고의 '인재 집단'을 만들기 위해선 다소 이기적일 수 있지만 '친정' 사정에 관심을 뚝 끊고 내 팀에만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고교 시절 "완전 공부벌레였다"고 했다.
"스탠퍼드에 처음 왔을 때는 과학 쪽으로 진출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투자은행에 취직할 생각이라고 해서 저는 '투자은행? 그게 뭐예요?' 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기본적으로 비즈니스를 위한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진짜 과학보다 더 재미있더라고요. 수학과 과학, 비즈니스와 경제를 모두 결합한 것이더라고요. 진짜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재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대학 2학년 때 정말 재미있어서 스탠퍼드를 통틀어 돈에 관한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유기돈의 ADVICE
1다른 사람이 원하는 당신이 되면 안 됩니다
당신이 품고 있는 열정을 직업으로 만드세요. 내면에서 진심으로 느끼는 열정을 찾아 그 길을 따라가십시오.
2직장에서 최고가 되려면 당신의 상사를 빛나게 하세요
그가 나오기 전에 출근하고 그가 퇴근하기 전까지 가지 말고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세요. 상사가 빛나면 당신도 빛날 것입니다.
3협상은 꾀를 부리지 말고 단순하게 하세요
상대방에게 거침없이 요구하는 데 창피함을 느끼면 안 됩니다. 주위에서 미쳤다고 해도 "그래 나 미쳤다"고 대답하는 배짱을 기르세요.
4매우 강력한 의견을 가지되 자존심은 버리고 토론하세요
내 의견에 누가 반대해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그래야 최고의 정답을 만들기 위한 토론이 가능합니다.
5실패를 포용하세요
내 자녀가 대기업에 갈 기회를 버리고 신생 벤처기업에서 실패해도 그걸 격려하고 인정해 주세요. 그것이 실리콘밸리 같은 창업 문화를 만드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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