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는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폐수종으로 입원했습니다. 그는 한달간
이 병원에 있으면서
찾아온 사람들을 향하여 고함을 치며 절규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 곁의 아내에게조차
묻지 못했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수많은 수필과 글을 남기며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지만 그의 마지막은 실로 비참하여
불안과 공포에 떨다가 결국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에 대해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에겐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의 고백교회 신학자인 본 회퍼는 세계대전 중 나치에게 항거하다가
독일의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미친 운전자가 차를 몰고 질주하며 사람을 마구 치어 죽이는데,
기독교가
그 차에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나 치러주고 가족을 위로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자동차에
뛰어올라 미친 운전자를 차에서 끌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히틀러 암살계획에
참여하면서 남긴 말입니다.
그는 결국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누가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데 그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혼연히 일어나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지 여러분! 이제 나에게도 죽음이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마지막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이미 주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만날 때까지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감옥을 나서는 그의 얼굴엔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넘쳐 흘렀습니다. 본 회퍼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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