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2.10.01 03:00 조선일보 이옥진 기자
노숙인 등 貧者와 함께한 22년
성천상 받은 ‘길 위의 의사’ 최영아
의사 최영아(52)의 운명은 1990년 비 오는 여름날 서울 청량리 청과시장에서 정해졌다. 당시 이화여대 의예과 2학년 학생이던 그는 선배들을 따라 행려병자들에게 밥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눈앞에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빗물과 흙탕물이 섞인 밥을 퍼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충격과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저분들도 인간인데 어떻게 이 도시 한복판에서, 단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살 수 있을까?’ ‘저들은 얼마나 많은 육체적 질병과 인간적 고통들과 싸우며 살고 있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 노숙인들을 만나면서 질문은 쌓여갔다. ‘이들은 얼마나 질병이 많을까’ ‘어떻게 해야 치료될까’ ‘이들은 과연 노숙인이 되기 전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001년 내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자마자, 본격적으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 노숙인들이 있는 곳을 향했다. 2002년 ‘밥퍼 목사’로 널리 알려진 최일도 목사와 함께 청량리 뒷골목에 ‘다일천사병원’을 세웠다. 이 병원의 유일한 상주 의사로 병원 사택에서 먹고 자며 밤낮없이 노숙인 환자들을 돌봤다. 하루 환자가 100명도 넘었다. 이후 영등포 쪽방촌에 있는 ‘요셉의원’, 서울역 ‘다시서기의원진료소’, 은평구 백련산 자락의 ‘도티기념병원’ 등에서 일했다. 2012년엔 여성노숙인쉼터 ‘마더하우스’를, 2016년엔 노숙인 재활을 돕는 비영리법인 ‘회복나눔네트워크’를 만들었다. 2017년 8월부터 현재까지 그가 적을 두고 있는 곳은 서울시립서북병원. 공공의료기관인 서북병원은 노숙인 거주 요양시설인 ‘은평의 마을’ 등과 연계해 의료 혜택 취약 계층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의사가 된 뒤 여러 병원에서 일했지만, 그는 항상 같은 곳에 있었다. 가난한 환자들 곁이다. 올해 ‘성천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다. 성천상은 중외학술복지재단이 JW중외제약 창업자인 고(故) 이기석 선생의 생명 존중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2년 제정했다.
지난달 서북병원에서 최영아를 만났다. 장대비가 쏟아진 이날, 30여 명의 환자가 1평 남짓한 그의 진료실을 찾았다. 노숙인 시설에서 온 사람이 많았다. 그는 이들의 사연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한 명 한 명 살뜰히 챙겼다. 그는 기자에게 “내 이야기를 감동스럽게 꾸미는 것은 싫다”고 했다. 단호한 말투였다.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건데, 사람들이 자꾸 상도 주고, 돈(상금)도 주고, 신문에 낸다고 그러니까 좀 민망해요. 저는 이 삶을 선택하면서 의사로서 더 많이 훈련받고, 성장했잖아요? 그런데 노숙인들의 삶은, 예전보단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제가 만난 사람 중엔 죽은 분도, 여전히 노숙인으로 사는 분도 많아요. 그분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어요. ‘저 사람들이 다르게 살 수 있게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란 마음도 들고…. 현실에선 굉장히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데, 작위적으로 꾸며진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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