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씨의 역사인식을 우려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퍼옴

 

한강씨의 역사인식을 우려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하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사실적이고 균형잡힌 역사•현실 인식을 위해 꽤 치열하게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인식이 뒤집히는 경험, 피가 꺼꾸로 치솟는 경험을 2번 한 적도 많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5.18, 4.3, 조선(구한말), 대한민국, 일본, 북한, 중국과 이승만, 박정희, 김구 등에 대해 균형잡힌 인식이 원래 어렵다.

주류적 관점내지 인식이 심각하게 왜곡되었거나, 비겁하거나 게을러서 집요한 왜곡을 조장•방치해버렸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김구가 정몽주, 조광조처럼 지식인의 사표가 된 것은 비극적 죽음외에도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격상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승만에 대한 정치적 격하와 절연은 1960~70년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 탓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결과가 2007년 여의도 통신의 국회의원 대상 (가장 존경하는 사람) 설문조사에서 김구가 압도적 1위가 되고, 이승만은 아무도 거론하지 않은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일본의 악마화와 일제시대의 지옥화는 1930년대 이후 초등학교에서도 조선말을 쓰지 못하게 한, 파쇼폭압(민족말살) 통치에 대한 공분을 바탕에 깔고, 모든 엘리트들이 반일민족주의에 경도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구한말)을 미화하고, 그 참혹한 실상에 눈을 감은 것도, 지극히 미미한 자력 근대화의 맹아를 찾아 침소봉대한 것도, 민족적 열패감을 떨쳐 내고, 일제를 더 세게 질타하기 위함이었다. 한마디로 역사적 사실을 바로 대면할 용기 내지 내공이 없었던 것이다.

1990년대 아니 2000년대 초반까지 북한과 중국에 대한 낭만적 인식의 뿌리도 1960~80년대, 사회주의가 잘 나가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관련 정보와 지식이 태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만 하더라도 반공사상 고취 의도를 노골화한 정부의 공식 해석 보다, 이영희 류의 해석이 더 신뢰가 갔으니!!

한강 작가의 5.18이나 4.3이나 6.25에 대한 이해가 사실에서 멀고, 좌편향적이라고 크게 우려하고 비난하는 사람을 제법 본다. 그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바로 잡아야 한다. 역사(서술)를 바로 잡고, 이를 바탕으로 수천만 수십억명을 감동시키는 문화예술(소설 다큐 영화 등)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피가 2번 역류하는 경험 내지 한국의 독특한 갈등은 세계적인 문학상을 낳을 좋은 소재가 되지 않을까한다.

대한민국 주류, 보수, 우파의 역사 공작 내지 전쟁의 오랜 방기로 인해 이제, 관심있는 사람(전문가와 준전문가와 역사 덕후 등) 정도가 5.18, 4.3, 김구, 이승만, 조선에 대한 사실적이고 균형잡힌 역사현실 인식에 겨우 도달했을 뿐이다.

이것이 언론사 기자, 방송사 pd, 유투브, 극작가, 소설가, 시인들에게도 공유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사실 역사현실은 관점에 따라, 처지와 조건에 따라 정말 다르게 보인다. 한강씨가 살았고, 생각이 여물어간 시공간과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또 피해자들의 구술 자료나 인터뷰를 통해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했다면, 5.18이나 4.3에 대한 한강씨의 인식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한강씨의 덜 여문, 편향적 역사인식 때문에 노벨상 수상 자체를 폄하해서야 되겠는가?!!

인간의 역사현실 인식은 일면성과 편향성이 숙명인데!!

현실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너무 노여워하거나 슬퍼 마시길!!

그럼에도불구하고 5.18, 4.3, 6.25 관련 장이 섰으니, 팔 물건을 준비한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팔아야 겠지만!!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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