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진보와 보수: 개념 정의와 국제 비교
1. 정치적 진보와 보수의 개념과 주요 신념
진보(Progressive/Liberal): 정치적 진보는 일반적으로 좌파 성향의 이념으로, 사회 개혁을 통해 평등과 진보를 추구한다. 진보 진영은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복지 제도 확충, 인권 보호, 시장 규제 등을 통해 공공선을 달성하려는 철학이다. 예를 들어, 진보 성향의 정책은 경제에서 정부 개입을 통한 빈부 격차 해소, 약자 지원, 공공 의료 및 교육 강화 등을 포함한다. 사회적으로는 표현의 자유와 소수자 권리를 옹호하고, 개인의 삶에 대한 정부 개입은 최소화하는 대신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중시한다.
보수(Conservative): 정치적 보수는 우파 성향의 이념으로, 전통적인 제도와 가치를 유지하면서 사회의 안정과 연속성을 강조한다. 보수 진영은 개인의 책임과 작은 정부, 자유 시장경제를 중시하며, 기존 질서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다 점진적 발전을 선호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관습과 공동체의 가치를 존중하고, 정부는 개인이 자신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심판”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본다. 보수 성향의 정책 예로는 감세, 규제 완화, 강한 법과 질서, 전통적 가족 가치 옹호, 강한 국방 등이 있으며, 사회 문제에 있어서도 급격한 변화보다 안정과 질서를 우선시한다.
2. 주요 국가별 진보와 보수의 구분 기준 비교
여러 나라에서 진보와 보수가 추구하는 정책과 가치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각국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강조점에 차이가 있다. 여기서는 미국, 한국, 일본, 유럽을 중심으로 경제 정책, 사회 이슈, 문화적 차이, 외교 정책에서 진보-보수 구도의 특징을 비교한다.
미국: 양당 체제의 진보와 보수
경제 정책: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진보 성향으로서 큰 정부와 적극적 재정 지출을 통해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고, 공화당은 보수 성향으로 작은 정부와 감세를 통한 자유시장 활성화를 강조한다. 진보 진영은 정부가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며, 보수 진영은 개인과 민간의 역량에 맡겨야 한다고 여긴다. 예컨대 민주당은 소득세 누진율 강화, 최저임금 인상, 의료보험 확대 등에 우호적인 반면, 공화당은 감세, 규제 철폐, 민영화를 선호한다.
사회적 이슈: 사회 문화적으로 미국 진보는 낙태 합법화, 성소수자 권리, 이민자 포용, 총기 규제 강화 등을 지지하며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강조한다. 보수는 낙태 제한(생명권 강조), 전통적 결혼과 가족 가치, 이민 제한, 총기 소유권 옹호, 종교적 가치 등을 중시한다. 예를 들어 진보 진영은 여성의 선택권과 LGBTQ 권리를 옹호하지만, 보수 진영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이를 반대하거나 전통을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
문화적 차이: 미국의 진보 세력은 대체로 세속주의와 다문화주의에 우호적이며 사회 변화에 개방적인 반면, 보수 세력은 기독교적 전통과 애국심, 지역공동체 중심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지역적으로 도시와 교외(진보) 대 농촌 지역(보수)의 정치 성향 차이로도 나타난다. 또한 진보 진영은 인종 간 평등과 역사적 과오(예: 노예제,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경우가 많고, 보수 진영은 전통적 영웅담이나 애국 교육 등을 중시한다.
외교 정책: 외교 면에서 미국의 진보는 다자주의와 외교적 협력을 중시하며 인권과 국제기구(UN 등)의 역할을 강조한다. 반면 보수는 국익 중심의 일방주의 경향이 있고 군사력에 기반한 강경한 외교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강하다. 예를 들어, 진보 성향의 정치인은 동맹국과 협력하여 기후변화 등의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고자 하고, 보수 성향의 정치인은 강한 국방력과 국가안보 우선 기조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 (단, 미국의 외교노선은 정권에 따라 변동이 있으며, 진보=비개입, 보수=개입주의로 단순 이분하기 어려운 복합성이 있다.)
한국: 현대사와 안보에 따른 진보와 보수
경제 정책: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진보 세력은 복지 확대와 재분배를 강조하며 대기업 (재벌)에 대한 규제를 통해 경제 민주화를 추구해왔다. 과거 진보 진영은 사회 안전망 강화와 대기업 해체 또는 견제를 주장하며 *“경제 정의”*를 앞세웠다. 반면 보수 세력은 시장주의와 성장 우선 기조를 강조하며 기업 친화적 정책을 옹호해왔다. 이들은 대기업을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보고 노동시장 유연화와 작은 정부 지향을 선호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고령화와 경제 환경 변화로 보수 진영도 복지의 필요성을 일부 수용하고, 진보 진영도 시장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등 양측의 경제 노선 차이는 다소 완화되었다.
사회 이슈: 한국 정치에서 서구처럼 낙태나 이민 문제가 극심한 진영 대립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진보와 보수 모두 이러한 이슈에는 상대적으로 온건하거나 실용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다만 노동 문제에서는 진보 진영이 노동조합과 노동자 권리를 대변하고, 보수 진영은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 성평등이나 청년 세대 관련 이슈에서는 세대 간 갈등과 교차하며 복잡한 양상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진보는 사회적 약자와 포용 정책을 더 지지하는 편이고 보수는 전통적 가족관과 질서를 좀 더 중시한다.
문화/역사 인식: 한국의 진보-보수 갈등에서 현대사에 대한 평가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된다. 진보 진영은 군사독재 시절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강하고, 과거사 청산과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강조한다. 반면 보수 진영은 박정희 정권 등의 산업화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반공(反共) 이념과 국가안보를 강조해왔다. 예컨대, 5·18 민주화운동이나 박정희 시대에 대한 입장 차이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뚜렷한 문화적 요소로 작용해 왔다. 또한 지역주의도 한국 정치문화의 특수성인데, 영남(보수 지지세) 대 호남(진보 지지세)으로 대변되는 지역 감정이 오랜 기간 선거의 변수였다.
외교/안보: 남북 분단 상황으로 인해 대북 정책과 안보관은 한국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진보 진영은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예: 햇볕정책)을 중시하며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교류하자는 입장인 반면, 보수 진영은 강경 억지력과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진보 성향의 정부는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인도적 지원 등 유화책을 추진해왔고, 보수 성향의 정부는 대북 제재와 군사 대비 태세를 강조해왔다. 대미·대중 외교에 있어서도 진보는 자주성을 강조하고 중국과의 균형 외교를 모색하는 경향이 있으며, 보수는 전통적으로 미국과의 동맹 강화, 일본과의 협력 중시 등 반공 블록 강화를 외교의 근간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다만 최근 국제정세 변화로 이러한 구분도 유연해지고 있다.)
일본: 보수 장기집권 속 점진적 진보 세력
경제 정책: 일본은 자민당(LDP)의 장기집권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자민당은 보수 성향의 정당으로서 전후 일본의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 자민당 보수 세력은 기업 친화적 환경 조성과 낮은 세율을 지지하고, 1950~70년대에는 정부 보조금과 보호무역을 통해 국내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비해 일본의 진보 성향 정당(예: 예전 사회당, 현재 입헌민주당 등)은 복지국가와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며, 노동자 보호와 사회보장 강화를 주장해왔다. 다만 일본의 진보 정당들도 재정 신중론을 취하는 등 급진적 경제정책보다는 보수에 비해 다소 개혁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정도인 경우가 많았다. 최근 몇십년간 자민당 내에도 파벌에 따라 온건 개혁파가 존재하여, 경제 정책에서 완전히 이념적인 대립보다는 실용적 접근이 부각되는 편이다.
사회/문화 이슈: 사회적으로 일본의 보수는 전통과 질서를 강조한다. 천황제를 존중하고 신토(神道) 등 일본 고유의 문화에 애착을 보이며, 가족 중심의 전통적 가치관을 중시한다. 반면 진보 세력은 평화헌법이 지향하는 자유와 다양성에 가치를 두고, 시민사회 및 인권 단체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한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권리나 젠더 평등 이슈에서 진보 측이 더 개혁적인 입장을 보이는 반면 보수 측은 전통적 성 역할을 중시하고 이러한 변화에 신중하다. 또한 일본 정치에서 종교단체(예: 보수 연합정권의 공명당은 불교계 기반)와의 연계도 문화적 요소인데, 보수는 이러한 기존 질서와의 연계를 통해 안정적 지지 기반을 갖는 반면, 진보는 세속적이고 탈권위주의적인 경향을 보여왔다.
안보/외교 정책: 일본 정치의 큰 쟁점 중 하나는 헌법 제9조(평화헌법) 개정 여부이다. 보수 진영(특히 자민당)은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군사력 강화를 위해 헌법 개정을 추진하며, 보다 적극적인 안보 정책(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을 지지한다. 반대로 진보 진영과 평화세력은 헌법 9조의 전수방위 원칙을 지키고 비군사적 평화노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대외적으로 보수는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강력히 지지하고 중국·북한 등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고, 진보는 동북아의 외교적 해결과 다자협력을 더 중시한다. 예컨대, 보수 성향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미국과 공조해 일본 방위력을 증강하고자 했으며, 진보 성향의 정치인들은 과거사 문제에서 좀더 겸손한 외교를 펼치고 평화헌법 체제를 지키려 했다. 또한 경제외교 측면에서 보수는 전통적으로 수출 산업 보호와 무역협정을 통한 국익 극대화를 추구하고, 진보는 노동·환경 기준을 중시하는 포괄적 무역을 지향하는 등의 차이가 나타난다.
유럽: 복지 국가와 전통 간의 스펙트럼
경제 정책: 유럽에서는 대부분 국가에 **중도좌파(사회민주주의)**와 중도우파(보수 또는 기독교민주주의) 세력이 존재하며, 경제 정책을 둘러싼 차이가 비교적 뚜렷하다. 진보적 정당들은 복지국가 전통에 따라 높은 세금으로 복지와 의료, 교육을 충실히 제공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회민주당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소득을 재분배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해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본다. 반면 보수 정당들은 시장경제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여 정부 지출을 절제하고 민간의 활력을 중시한다. 영국 보수당이나 독일 기독교민주당(CDU)의 경우 세율 인하, 규제 완화, 자유무역 등을 통한 경제 성장에 무게를 두며, 국가 개입은 최소화하려 한다. 다만 유럽 보수정당들도 대개 기본적인 복지제도는 유지하는 온건 보수인 경우가 많아, 미국에 비해 좌우 간 격차가 크지 않은 편이다.
사회/문화적 이슈: 유럽의 진보 세력은 대체로 세속주의와 사회적 자유를 옹호한다. 이들은 낙태권, 성소수자 결혼 합법화, 안락사 허용 등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입장을 펴고, 이민자나 난민 수용에도 비교적 관대한 경향이 있다. 반대로 보수 세력은 전통적 가족과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한 도덕관을 중시하여, 일부 가톨릭 영향이 강한 국가의 보수정당은 낙태나 안락사에 반대하고 전통적 결혼을 강조하기도 한다. 가령 폴란드의 보수정부는 낙태를 거의 전면 금지하는 정책을 폈고, 진보 진영과 시민들은 이에 반발하여 시위를 벌였다. 또한 이민 문제에 있어서도 서유럽의 극우 성향 보수정당들은 반이민 정서를 활용해 지지를 얻고, 진보 정당들은 다문화주의와 인권적 접근을 강조하며 갈등이 나타난다. 문화적으로는 진보가 종교의 정치 개입을 경계하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반면, 보수는 애국심, 국가 정체성 수호, 전통문화 보전에 힘쓴다.
외교/통합: 유럽 수준에서 보면 EU 통합에 대한 입장 차이도 진보-보수 간에 나타난다. 대체로 중도 진보 세력은 유럽연합(EU)을 통한 초국가적 협력을 지지하고 공동의 규범(인권, 환경 등)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보수 세력은 국가 주권을 중시하여 EU 통합에 회의적이거나, 적어도 국가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영국 브렉시트 찬성 진영에는 보수적 국민정서와 주권 강조 논리가 강했고, 진보 진영은 EU 잔류를 더 지지하는 성향을 보였다. 외교안보 측면에서는 유럽 진보 정당들이 군비 축소와 평화중재를 강조한 반면, 보수 정당들은 NATO를 통한 집단안보와 국방비 유지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다만 러시아의 위협 등이 현실화하면서 최근에는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안보 인식이 강화되는 추세다.
3. 독특한 정치적 구분점 사례: 이란
일부 국가는 전통적인 진보-보수 구분과는 다른 독특한 정치 분열 구조를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이란을 들 수 있다. 이란은 공식적으로 이슬람 신정체제를 채택하고 있어 서구식의 진보/보수 구도가 아닌 **“보수적 원리주의자 vs. 개혁파”**의 대립 구도가 두드러진다.
이란의 **보수파(원리주의자)**는 이슬람 혁명의 이념과 종교적 원칙에 철저히 입각해 국가를 운영하려는 세력이다. 이들은 성직자들이 주도하는 비선출 기구 (예: 최고지도자, 혁명수비대 등)에 기반을 두고, 서방에 대한 불신과 혁명 이념 수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보수파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 적용과 반서구 자주노선, 강경한 사회 통제를 지지하며, 국가 정책 결정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권위를 강조한다. 한마디로 종교적 보수와 반(反)개방적 성향으로 요약된다. 실제로 보수 강경파는 여성의 복장 규제나 언론 통제 등 내부적으로는 보수적 사회규범을 강요하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등 서방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특히 핵 개발 문제나 대미 관계에서 강경 노선을 취하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이란의 **개혁파(온건·개혁주의자)**는 같은 이슬람 공화제 틀 안에서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민선 대통령과 의회를 통해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정치적 자유 증대와 대외 관계 개선을 주장한다. 예컨대 1997년 당선된 하타미 대통령이나 2013년의 로하니 대통령 등은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며, 임기 중 표현의 자유를 일부 확대하고 서방과의 외교적 해빙을 시도했다. 개혁파는 경제 개방과 서방과의 대화를 통해 국민 생활을 개선하고자 하며, 지나치게 엄격한 종교 규범의 완화를 검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도 체제 전복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슬람 공화국 체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다만 해석과 운영에서 유연함을 보이는 정도의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이란의 개혁 진영은 실용주의와 상대적 개방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처럼 이란 정치에서는 서구적 의미의 좌우 이념보다는 종교 혁명 이념을 얼마나 엄격히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가 정치 세력을 가르는 축이 된다. 즉, 원리주의적 보수 vs. 개혁적 온건이라는 특이한 구분점이 존재하며, 이는 그 나라의 체제(신정 정치)와 혁명 역사에 뿌리를 둔 것이다.
그 밖에도, 중동의 왕정 국가들(예: 사우디아라비아)은 절대군주파 vs. 온건 개혁파, 북아일랜드는 종교 및 민족 정체성(프로테스탄트 영국연합주의 vs. 가톨릭 아일랜드통일주의) 등과 같이, 전통적 경제·복지 이슈보다는 종교나 정체성이 정치 구분의 핵심이 되는 사례가 있다. 이처럼 국가에 따라 정치적 대립의 축이 진보-보수라는 좌우 스펙트럼과 다른 차원에서 형성되기도 한다.
4. 진영을 바꾼 유명 정치인 사례
정치인의 이념이나 소속 정당은 고정불변이 아니며, 시대 흐름이나 개인 신념 변화, 정치적 계산에 따라 진보 정당에서 보수 정당으로 또는 보수 정당에서 진보 정당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음은 그런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몇몇 유명 정치인들이다.
윈스턴 처칠 (영국) – 보수 → 진보(자유당): 처칠은 처음에는 보수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나 1904년 자유무역을 둘러싼 견해 차이로 당을 떠나 자유당으로 옮겼다. 특히 당시 보수당의 보호관세 정책이 계층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보고 이에 반대하는 소신에 따라 당적을 바꾼 것이다. 처칠 본인은 “1904년의 당적 변경은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고 회고했는데, 실제로 그는 평생 자유무역을 지지하며 관세로 특정 계층에 특혜를 주는 것을 반대했다. (참고로 처칠은 이후 1920년대에 다시 보수당으로 복귀하여 총리를 지냈는데, 이처럼 두 차례 당적 변경을 한 이력 때문에 당내 신뢰 위기가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 진보(민주당) → 보수(공화당): 레이건은 원래 뉴딜 정책에 호의적이었던 민주당 지지자였고 1950년대까지 민주당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1962년경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변화하여 공화당에 입당했는데, 그 계기로 민주당이 지나치게 진보(자유주의) 성향으로 기울었다고 느낀 점을 들 수 있다. 레이건은 민주당의 큰 정부 지향과 사회 프로그램 확대에 실망했고, 반공주의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이념에 동조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나는 평생 민주당원이었지만 더는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경제적 보수주의를 구현할 주체로 공화당을 선택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감세와 정부 축소, 강경한 대외정책으로 현대 보수주의의 아이콘이 되었다.
손학규 (한국) – 보수(한나라당) → 진보(민주당 계열):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한때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내 대권주자 반열에 있었으나, 2007년 당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한나라당을 전격 탈당했다. 그는 탈당 당시 “새로운 정치 질서를 모색”하겠다며 독자 행보를 시작했고, 이후 중도·진보 진영의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계열) 경선에 참여하여 야권 지도자로 변신했다. 손학규의 이념 전환 배경으로는 보수 정당 내에서의 한계 봉착, 당시 진보진영의 정권 재창출 필요성, 그리고 대북 포용정책 등에 대한 비교적 온건한 견해 등이 거론된다. 특히 그는 한나라당 내 상대적으로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었고, 노무현 정부의 남북 화해 기조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서 보수 강경파와 이견이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의 정치 철학에 맞게 진영을 이동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치로 오자와 (일본) – 보수(자민당) → 진보(야당 연합): 오자와 이치로는 일본 자민당 내 유력한 보수 정치인이었으나, 일당 지배 체제를 종식시키고 양당제를 정착시키겠다는 목표로 1993년 자민당을 탈당했다. 그의 이탈은 자민당 장기집권에 대한 유권자 불만이 높던 시점에 이루어져, 동조 탈당을 촉발하고 결국 비자민 연립정권(호소카와 내각) 수립으로 이어졌다. 오자와는 이후 진보 성향의 신생 정당들을 결집하여 민주당(DPJ)을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고, 2009년 민주당 정권 교체의 전략가로 활약했다. 그가 진영을 바꾸게 된 계기는 정치 개혁에 대한 신념으로, 기존 보수당 내파(派) 정치로는 일본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자와는 보수 → 개혁진보 진영 이동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이처럼 국내외 정치사에서 당적 변경이나 이념 전환을 한 인물들은 종종 등장하며, 그 이유도 다양하다. 개인 신념의 변화(레이건 사례), 당내 노선 갈등(처칠, 손학규 사례), 새로운 정치환경에 대한 대응(오자와 사례) 등 각각의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행보는 정치인 개인에게는 위험부담이 따르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변화와 정당 재편의 동인이 되기도 한다.
5. 결론 및 정리
정치적 진보와 보수는 이념의 양 극단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으며, 각 사회의 역사와 문화, 당면 과제에 따라 그 의미와 구체적 정책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진보는 변화와 평등을, 보수는 안정과 전통을 키워드로 삼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상호 절충과 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미국·한국·일본·유럽 등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진보-보수 구도가 정치 경쟁의 기본 축을 이루고 있고,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 여러 분야에서 국민들의 다양한 가치관을 대변하며 정책 방향을 놓고 경쟁한다. 한편, 이란과 같이 특별한 이념 구도를 가진 나라의 사례를 보면, 이념 갈등의 축은 보편적이라기보다 그 나라 고유의 맥락에 크게 영향받는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인은 고정된 이념보다 국가 발전과 국민 요구에 부응하는 현실적인 선택을 할 때도 있다. 진영을 넘어선 정치인의 이동 사례는 정당 체제 변동과 이념 재편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는 유권자들에게 각 이념의 장단점을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결국 진보와 보수의 건강한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 발전에 필수적이며, 두 진영 간의 생산적인 토론은 보다 나은 정책 대안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이번 조사를 통해 각국의 진보-보수 개념과 쟁점, 그리고 정치인들의 이념 변천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현대 정치의 복잡성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유권자로서 우리에게 정치 지형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사고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출처] 정치적 진보와 보수에 대해|작성자 babel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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