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개교회주의 문제
손 봉 호
1. 머릿말
개교회주의란 현대 한국기독교의 특이한 현상이다. 역사상 개교회주의가 하나의 문제로 대두된 일이 없었고 우리나라에서도 60년대까지는 개교회주의가 심각하지 않았다.
개교회주의란 한 교회의 영향력, 사역, 성장을 그리스도의 교회전체의 영향력, 사역, 성장보다 더 중요시하고, 다른 교회와 경쟁적인 관계에 서는 경향을 뜻한다. 그래서 한 교회가 할 수 있는 선교나 구제사업을 교단이나 여러 교회가 힘을 합쳐서는 할 수 없고, 어떤 사업을 한국교회 전체나 여러 교회가 힘을 합쳐서 추진할 때는 동원되지 않는 인적, 물적 자원이 개교회가 추진할 때는 동원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교회의 목회자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드는데도 자기 교회의 냉방장치와 주차장 확장에 더 많은 연보를 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개교회주의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개교회주의가 긍정적인 면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기교회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서 더 많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장려해야 할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존재하고 발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올바로 전파되기 위함이지 개교회 자체의 영광을 위함이 되어서는 안된다. 같은 목적을 위해서 사역하는 다른 교회와 경쟁관계에 선다는 것은 교회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망각하고 부차적인 것을 궁극적 위치에 세우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2. 개교회주의의 부정적인 결과들
개교회주의는 개인의 창의성과 경쟁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은 자본주의가 가진 많은 약점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다.
1). 자본주의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貧益貧 富益富현상인바, 개교회주의도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 교회끼리 경쟁하면, 힘이 있는 교회는 교인들을 많이 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목회자를 모실 수 있고, 그런 목회자가 목회를 하면 교회의 힘은 더욱 커져서 더욱 유능한 목회자를 모실 수 있다. 그래서 큰 교회는 점점 더 커지고 힘이 없는 교회는 더욱 더 힘이 없는 교회가 된다. 자본주의에서 힘이란 돈의 힘인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인정되는 힘도 주로 교인 수와 연보돈의 힘이다. 대기업이 생겨나듯 이런 과정을 거쳐 대교회가 생겨나는 것이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 대교회들이 있지만,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한국에 있으며, 교회자본주의가 한국에서처럼 극심한 나라는 세계에 없을 것이다.
물론 더욱 많은 교인들을 모으는데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자격들이 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설교자의 휼륭한 인픔, 올바른 신학, 잘 준비된 설교, 깊은 영적 체험과 뜨거운 기도, 능숙한 행정력, 좋은 교육배경등과 교회의 활발한 구제 혹은 선교사업, 교인들의 열심과 사랑등. 그러나 더러는 감정의 흥분, 설득력 있는 말제주, 비본질적 활동을 통하여 인기를 모으는 목회자도 없지 않다. 요즘은 좋은 건물, 화려한 내부시설, 쾌적한 냉․난방장치, 넓은 주차장, 편리한 교통등도 많은 교인들을 모으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런 조건을 갖추는데도 많은 돈이 들기때문에 돈이 많은 교회라야 더 많은 교인들을 모을 수 있고,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동원할 수 있게되는 상승작용이 일어난다.
2). 한국교회의 괄목한 성장에는 특이한 역사적 배경과 신앙적 요소들이 공헌했지만, 그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자본주의적 경쟁이다. 한국은 종교법이 없는 소수의 국가들가운데 하나로 교회의 활동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거의 없고, 노회와 총회등 교단조직이 있으나 개교회활동에 거의 간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만큼 타율적인 규제들로부터 자유로운 교회는 전 세계에서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한국교회는 피눈물나는 경쟁을 통하여 양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빌 1:18)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의 활동은 개교회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교회가 다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복음의 확장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기독교 전체의 사역과 성장을 방해하는 개교회의 성장과 사역은 무의미하거나 오히려 부정적이다. 바울도 오늘날 우리나라의 개교회주의는 결코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복음전파가 방해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교회끼리 경쟁하고 있는 모습이 교인들이나 비신자들에게 매우 추하게 보여서 교회의 위신과 복음의 영광을 손상시키고 전도에 지장을 초래한다. 같은 건물에 여러 개의 교회가 같은 십자가를 달고 있는 모습이라든가, 똑 같은 개신교회가 서로 교인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이 시장에서 물건파는 상인들의 모습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이기는 힘든다.
경쟁하는 것은 이기기 위함이다. 이기려 하기때문에 경쟁이 과열되고 비도덕적이 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각종 규칙이 마련되어 있고, 그 규칙들이 엄격하게 지켜져야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경쟁에는 불행하게도 아무 규칙도 형성되어 있지않고 상식적인 규칙도 엄수되도록 규제하는 외부의 힘이 없다. 그러므로 경쟁은 매우 쉽게 교회의 활동을 비도덕적으로 만든다. 개교회를 성장시키고 개교회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가끔 비신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도 서슴치 않게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도덕적으로 타락시킨 중요한 원인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교회주의다.
3). 교회가 서로 경쟁상태에 있는 한 전체 복음사역을 위한 교회연합이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한국 초대교회에서는 구제, 전도, 교육, 계몽, 구국운동등을 위하여 교회들이 쉽게 연합할 수 있었고, 60년대까지만 해도 같은 교단내 교회끼리는 비교적 잘 연합하였다. 그러나 70년대와 80년대에는 부활절 연합예배, 선교 100주년 기렴사업, 찬송가합동외에는 거의 아무 연합활동도 없었다. 초교파적인 연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같은 교단 교회들간의 연합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회들이 연합하지 못하기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경제에 막대한 낭비가 생겨난다. 서로 인접해 있는 두 작은 교회는 합쳐놓은 한 교회보다 더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낭비하며, 두 신학교가 합쳐졌을 때, 교육의 질은 훨씬 더 높아지고 경비는 많이 절감된다. 지금 수많은 선교연구소와 선교훈련원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 시설, 자료, 교수요원등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합쳐 놓으면 경비를 많이 절감할 수 있고 질높은 연구와 훈련이 가능한데도 합칠 수 없기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을 낭비하는 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개교회가 단독으로 선교사를 파송함으로 체계적인 선교감독이 소홀해지고 선교사가 안정된 선교활동을 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 올 뿐 아니라 불필요한 경쟁과 낭비를 가져온다.
그리고 연합하면 이룩할 수 있는 대외적 사역들을 연합할 수 없기때문에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의 20%나 되는 신자의 수를 자랑하면서 한국교회는 정치, 문화, 교육, 특히 사회의 도덕적 가치에 아무 긍정적인 공헌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힘만 모을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부정과 부조리를 고칠 수 있다. 물론 잘못된 신학, 질낮은 교회교육때문에 성경적 사회참여에 대한 의식도 결여되어 있지만, 당연히 행사해야 한다고 인정하는 영향력도 연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3. 개교회주의의 원인들
1) 개교회주의는 한국 민족성의 가장 큰 약점인 비합리적 개인주의와 파벌주의가 기독교계에 영향을 미치기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파벌주의와 개인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무시하고, 우선의 이익을 위해서는 전체의 궁극적 이익을 희생시킴으로 결과적으로 자신도 손해를 보는 비합리적인 개인주의다. 이런 것은 해외 교포사회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국제경쟁에서 패배하게 하는 우리 민족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한국교회는 이런 민족적 약점을 극복하고 고칠 수 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유산을 그대로 인수한 것이다.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된 서양에서도 우리의 것과 같은 부정적인 개교회주의를 찾아 볼 수 없고 다 같은 유교적 문화권에 있는 일본이나 중국에도 우리의 것과 같은 개교회주의가 나타나지 않는데 유독 우리나라에만 심각한 문제도 대두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독특한 약점때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은 자본주의에 적합하고, 자본주의는 개인주의를 강화시킨다. 한국기독교의 개교회주의는 전통적 개인주의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 의하여 더욱 강화되었음이 분명하다..
교회간의 경쟁이 주로 교인의 수, 연보의 액수등 수량적으로 개산될 수 있는 것에 집중된 것도 역시 자본주의적 경제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더 많은 선교와 구제를 위하여 경쟁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업자체보다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명성과 성취감이 더 크게 작용한다면 그것은 역시 세속적 자본주의를 닮은 것이요 부정적이다.
3) 그리스도인의 수가 증가한 것도 그 한 원인이다. 그리스도인이 극소수였던 초대교회에서는 다른 교회와 다른 그리스도인은 매우 귀중한 동역자요 혈육보다 더 귀한 형제, 자매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수가 늘고 교회 수가 늘어나서 이제 사회의 커다란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자 다른 교회와 다른 그리스도인은 동역자가 아니라 오히려 경쟁자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4) 물론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목회자들의 잘못된 생각과 가르침이다. 그리스도 나라의 명성과 이익보다는 자신과 자기 교회의 명성, 성취, 이익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우리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신도들은 “개인의 이익이 곧 전체의 이익”이란 자본주의의 명제를 교회의 사역에도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있다. 그러나, 경제계에도 그 명제가 항상 타당하지 않거니와 특히 교계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개교회의 이익이 질적인 것이라면 그 명제는 타당하겠지만 그것이 양적인 것일 때는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심각한 문제들을 가져오는 것이다.
4. 개교회주의에 대한 대책
1) 목회자들의 사례를 어느 정도 평준화해야 한다. 교단별로 목회자 사레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설정해야 사례를 많이 할 수 있는 교회만 뉴능한 교역자를 모실 수 있는 병패를 막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재물때문에 생기는 목회자의 타락을 상당할 정도로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목회자들의 사례를 평준화 하려면 노회, 총회에 바치는 상납금이 증가되어야 할 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교회가 다 그리스도의 몸이란 사실과 다른 교회도 같이 잘 성장해야 그리스도의 나라가 확장된다는 사실을 인식케 하는 교육적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2) 교구제도를 장려할 필요가 있다. 각 교단별로 교구를 설정하여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신자들은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먼 곳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기 위하여 낭비해야 하는 막대한 시간과 교통비를 줄이고, 자녀와 부모가 서로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기현상을 막을 수 있으며, 지역사회와 교회가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전도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화란의 모든 개신교단들은 이런 교구제도를 체택하고 있다. 우선 수요일 저녁만이라도 신자들이 집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도록 장려할 필요가 있다.
3) 설교자 순환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일정한 지역내의 모든 목회자들은 자기 교회에서만 설교할 것이 아니라 그 지역안의 모든 다른 교회에 순번으로 설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화란의 일부 개신교회에서 체택하고 있는 제도인데, 목회자들로 하여금 매 주일 새로운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줌으로 오히려 좋은 설교를 할 수 있게 하며, 교인들은 항상 새롭고 좋은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만든다.
4) 구태어 제도를 바꾸지 않아도, 목회자들과 장로들이 성경의 원칙과 기독교적 신사도에 충실하면 개교회주의는 많이 완화시킬 수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의 등록을 금지하고, 가능한 한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도록 권장하며, 훌륭한 인재를 많이 양성하여 좋은 목회를 하도록 하며, 교회가 적정선 이상으로 커지면 즉시 분가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체의 사치와 자본주의적 교세확장보다는 마게도니야 교회들처럼 어려운 교회를 적극적으로 도와 모든 교회가 어느 정도 “평균케” 되도록 할 마음만 있다면 개교회주의의 부정적인 면은 상당할 정도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함이므로 개교회가 따로 활동하는 것보다 연합사업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더 큰 보탬이 될 때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목회자가 진정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목회자요 성경에 충실한 목회자란 인식이 한국교회에 확산되어야 자본주의적인 경쟁에서 승리하는 사람만이 부러움을 받는 지금의 풍토가 개선될 것이다.
[출처] 한국교회의 개교회주의 문제|작성자 e_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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