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처칠, 레이건, 정주영… 그들에겐 유머가 있었다 [출처] 링컨, 처칠, 레이건, 정주영… 그들에겐 유머가 있었다|작성자 봄산처럼

 박정웅 MGI컨설팅 대표

입력 2026.11.04. 03:00업데이트 2026.11.04. 10:08


극한 대치 국면마다 기지와 여유로 상황 장악

증오의 언어로 막힌 한국 사회에 절실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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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는 인간관계의 ‘엘릭서(elixir·묘약)‘라고 한다.

대문호 톨스토이가 “그는 미국보다 위대했으며, 미국의 대통령을 다 합친 것보다도 위대했다”고 말한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도 대통령 재임 시 그의 학력이 초등학교 1학년 중퇴라는 점과 튀어나온 광대뼈, 푹 팬 양 볼과 움푹 들어간 눈, 주걱턱 등 외모로 정적들로부터 끊임없는 모욕적 공격을 받곤 했다. 한번은 그가 연설 중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정적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는 잠시 연설을 멈췄다가 차분히 말했다. “나를 방금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얼굴이 두 개라면 못생긴 이 얼굴을 가지고 여기 나왔겠습니까?” 좌중에는 폭소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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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이 매일 독일의 폭격으로 런던 시내가 불바다가 되는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 있을 때였다. 쌓인 피로에 지친 그가 비상 각료회의에 좀 늦게 도착했다. 반대파 각료들이 그의 비상시국에 대한 그의 자세를 비난하고 나섰다. 씩 웃고 난 후 “여러분도 나처럼 아름다운 아내를 가지고 있으면 내가 늦잠을 자고 지각하는 것을 이해할 거요” 능청을 떨었다. 심각해야 할 각료회의가 잠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모처럼 각료들에게도 새로운 용기가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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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범 존 힝클리 주니어의 총격을 받고 쓰러져 황급히 응급실로 실려 갔다. 폐에 구멍이 뚫린 중상이었다. 고령인 그에게는 수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중상이었다. 수술실로 침대에 실려 들어간 그에게 아직 의식은 있었다. 의사가 레이건 대통령에게 말했다. “각하, 이제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레이건 대통령이 의사와 주위를 둘러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은 물론 모두 우리 편 공화당원이겠지요?” “각하, 최소한 오늘은 우리가 전부 공화당원이 되겠습니다.” 의사의 대답 역시 명유머였다. 죽음의 위기에 처해 절박했던 순간에서도 빛난 위대한 유머의 여유였다. 이 소식을 방송으로 들은 미국 국민들은 환호하고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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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얘기도 있다.

마오쩌둥이 중대 정치 사안을 발표하고 참석한 당 간부들에게 동의를 구하며 반대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의사를 표할 것을 요구했다. 덩샤오핑이 혼자 손을 들어 반대하고 나섰다. 이를 바라본 마오쩌둥은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넌지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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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가 손을 든 높이는 다른 동무들이 앉아 있는 것과 같으니 찬성한 것으로 합시다.” 덩샤오핑 역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손을 내렸다고 한다. 마오쩌둥의 유머 감각과 흑묘백묘 실용주의 노선으로 중국 역사의 거대한 물꼬를 튼 거인 덩샤오핑의 여유가 돋보이는 일화다. 작은 거인 덩샤오핑의 키는 152㎝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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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우리나라 인물들 중에는 이러한 유머 감각을 가졌던 예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최근 들어 정치 일각에서는 극도의 증오와 대립, 경멸의 언어로 국민을 질식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 기업인 중에는 고 정주영 회장의 유머 감각이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재계 원로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자주 우스갯소리를 성대모사까지 섞어가며 연기를 해서 좌중을 즐겁게 하던 것을 필자는 자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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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1971년 조선소를 짓기 위해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에서 차관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며 “우리는 영국보다 앞서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소”라고 설득했다는 것도 사실은 정주영 회장의 기지를 발휘한 한 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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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현대식 조선의 역사가 사실상 일천하고 기술과 경험, 숙련공도 없다는 구차한 이야기보다 국면 전환을 위한 기발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또 한 예로 영국 금융기관 수출신용보증국(ECGD) 부총재와 만날 때 발휘된 정주영 회장의 배포와 유머 감각의 일화도 있다. 회의 일정 전날이 마침 공휴일이라 옥스퍼드대 관광을 했다. 다음 날 ECGD 부총재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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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GD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어 긴장되는 회의였다. ECGD 부총재가 대화의 기선을 잡기 위해 말을 꺼냈다. “정 회장님의 전공은 경영학입니까, 아니면 공학입니까?” 정 회장의 학력을 미리 알고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정 회장이 즉시 대답했다. “당신들은 우리가 제출한 사업 계획서를 보았습니까? 사실 어제 내가 그 사업 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대에 가서 학위를 달라고 했더니 척 들춰보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주더군요. 바로 그 사업 계획서가 나의 박사 학위 논문입니다. 하하하하!”

부총재가 감동한 듯 대답했다. “옥스퍼드 박사들도 이런 완벽한 사업 계획서는 못 만들 겁니다. 이제 보니 당신의 전공은 유머이군요. 당신의 사업 계획서와 유머 감각을 믿고 차관을 승인하겠습니다.” 정 회장이 만약 학력 질문에 위축되어 어릴 때 강원도 산골과 가정 형편이 어땠고 등 사정을 설명해야 하는 대신 기개가 빛났던 순발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요즘 우리나라 사회의 소위 중진급 인사들, 특히 정치계 인사들의 관계는 숨 막힐 정도로 메마르고 대치와 경멸, 증오로 가득 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인간관계의 만능 묘약이랄 수 있는 유머 감각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여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큰 그릇의 인간적 도량과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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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을 수만 없는 유머… 포드 대통령의 이집트 방문

1979년 1월 16일 미국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퇴임 후 2년 차에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을 방문하기 위해 이집트에 도착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도 그의 재임 당시 외국 지도자와의 인맥 등을 고려하여 외교 일선에 나서는 일이 종종 있다.

포드 대통령의 방문도 당시 중동의 긴장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특히 당시 이집트에 망명하고 있던 이란의 마지막 황제 샤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와의 만남도 계획되어 있어서 세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동의 긴장 문제는 세계 언론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만큼 세계의 주요 TV와 언론이 동원되어 취재 경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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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리고 환영 행사를 위해 포드 대통령이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진기자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고 TV 카메라가 이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집중되기 시작했다. 포드 대통령이 몇 발자국 트랩 계단을 내려오다 작열하는 카메라 플래시에 순간 시선을 잃었는지 트랩 계단을 헛디뎌 중심을 잃은 채 트랩 계단을 굴러서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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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환영 나온 인사들과 취재진은 극도로 긴장했다. 시작부터 불안한 중동 상황이 불길해지는 징조가 아닌가 하는 데서 그랬을 것이다. 다행히 포드 대통령이 옷을 털며 일어섰다. 그리고 도착 성명의 일성이 나왔다. “여러분, 이집트는 어려서부터 내가 방문을 꿈꿔 오던 나라였습니다. 나는 이집트의 유구한 역사와 사다트 대통령과 이집트 국민을 존경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집트를 점잖게 오지 못하고 굴러 들어온 것을 사과합니다.”

그가 환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 순간 긴장했던 환영 인사와 취재진 사이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긴장되었던 분위기도 순식간에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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